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깊고 푸른 밤 (문단 편집) == 기타 == 그 동안 방송출연 금지와 미국유학, 전두환과의 스캔들로 공백기에 있던 장미희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당시 80년대 트로이카로 유명한 [[이보희(배우)|이보희]]가 주연으로 흥행한 [[어우동]][* 서울의 단성사에서 39만 2천 명을 동원하였다.]을 꺾고 49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1985년에 가장 많은 관객수를 누린 영화가 되었다. 또 당시 [[사랑과 진실]] 등에 출연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누리던 [[원미경]] 주연의 [[자녀목]][* 이쪽도 영화의 성적 수위가 굉장히 높았다. ~~원미경의 유두를 볼 수 있는 영화~~]과 동시상영했는데, 결과는 뭐 아시다시피 깊고 푸른 밤의 압승이었다. 또 영화에서 장미희의 팔뚝을 보면 이전 영화와 달리 엄청나게 메마른데, 이런 모습을 보면 장미희가 영화촬영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느낄 수 있다. 당시 상영상황을 말하자면 처음에는 명보극장에서 상영하다가 스크린쿼터제로 인해 코리아극장으로 상영관을 옮겼다. 그래서 명보극장의 기록만 보면 49만명이지만, 코리아극장까지 합치면 60만에 다다른다.[* 당시에는 전국 단위로 관객을 매기는 현재와는 달리, 서울 하나의 상영관에서 동원한 관객 수가 영화의 동원관객수로 기록되었다.] 이는 당시까지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관객을 동원했던 겨울여자의 58만 관객수를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만약에 이 기록이 인정된다면 장미희는 자신이 갱신한 최고기록을 자신이 또 갱신하는 영광을 누린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기록은 91년 67만을 동원한 [[장군의 아들]]로 인해 깨졌다. 하지만 60만은 비공식적인 기록이라 사실상 겨울 여자가 장군의 아들 이전까지 국산영화중 최고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로 기록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당시 침체기에 있었던 영화계 속에서 거둔 기록인데, 이러한 기록이 가능했던 것은 그동안 청순한 여성 역을 맡았던 장미희가 단발머리를 하고 이국적인 물을 흠씬 담아 이미지를 바꿨다는 점과 안성기와 더불어 배역에 어울리는 연기, 속도감 있는 전개 등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에로물로 전락한 국내 영화를 외면하고 [[홍콩 영화]], [[할리우드|헐리우드 영화]] 등 외화가 판을 치게 되어 미국에 대한 동경심이 영화계에 있었던 와중에 깊고 푸른 밤은 '''미국'''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거둘 수 있었던 기록이기도 했다. 이와 비슷하게 미국을 다룬 소재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중에서는 이보희 주연의 [[아메리카 아메리카]] 등이 있었다. [[안성기]]는 이 영화를 계기로 3번째로 대종상, 4년 연속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할 수가 있었다. 장미희의 경우에는 여우주연상을 놓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비슷한 시기에 흥행한 [[길소뜸]]의 여주인공 [[김지미]]에게 상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분류:1985년 영화]][[분류:한국의 로맨스 영화]][[분류:소설 원작 영화]][[분류:백상예술대상 대상 수상자]][[분류: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수상작]][[분류: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분류:최인호(작가)]][[분류:청소년관람불가 영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